뭐가 중헌디?
 
총체적 난국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의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이며, 7위의 무역대국이라는 자부심은 경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바뀌었고, 한때 우리 경제의 자부심이 되었던 자동차, 조선 등의 영역에서는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래됐다. 그 여파는 한국 경제의 근간이었던 대기업을 넘어, 중산층의 중추였던 수많은 중소기업들의 피눈물이 되어 가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의 일환으로 사상 최대 폭 (16.4%)으로 인상된 최저임금과 2년 연속 추경이 편성된 데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실물경제의 전망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인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고, 청년실업에 대한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으며, 주요 경제연구소 및 경제 기관마다 우리의 경제 성장률에 대한 예측치를 앞다투어 낮추어 발표하고 있다. 많은 국민의 염원을 담아 큰 발걸음을 내디딘 문재인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해석의 여지는 있을지 몰라도 지표상으로, 또 국민들이 실감하는 바로는 심히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물론, 경제정책의 3대 기조 중, 가장 핵심적으로 부각되었던 소득주도 성장의 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나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필자 역시 동의하며, 이에 대한 논쟁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도 소득주도 성장이 다양한 도전에 이미 직면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경제지표를 볼 때 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한 견인차로서 작용해야 할 민간부문에서의 소득성장 효과는 미비하고, 오히려 정부소비가 경제성장을 그나마 버티게 해 주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내고 이를 통해 경기의 선순환을 이끌어 내는 과정이라고 판단하기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의미한다. 이런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우려가 필자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이 정책만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인 것처럼 강력한 메시지로 포장되어 국민들에게 시그널을 주고 있고, 이로 인한 소득주도 성장 자체에 대한 피로감과 회의감은, 경제정책 기조의 다른 2가지 축인 혁신성장과 공정경제 구축이라는, 어쩌면 더 중요한 목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파생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진정 우려스러운 것은 소득주도 성장의 성과에 대한 시시비비에 매몰되어 지금 이 시점에서 정말로 우리 경제에 가장 크게 필요한 혁신성장 정책에 대한 관심과 이를 위한 전략적 노력 및 정책적 방향성 제시가 너무나 미약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경제 성장과 지속적인 기업 발전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소득 증대를 통한 펌프질보다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변화하며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줄 수 있는 혁신임을 이미 지난 경제 발전의 역사와 연구들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시장에서도 바로 증명이 되어, 글로벌 시가총액 500대 기업에 포함된 한국기업의 수는 4개에 불과하여 2008년과 같은 수준에 머물렀던 반면, 동기간 미국은 145개에서 186개로, 중국은 43개에서 63개로 늘어났다. 무엇보다, 새로 순위에 올린 기업 175개 중, 미국기업은 71개, 중국은 32개였다. 이러한 수치에 더하여, 혁신과 기업생태계의 건전성에 대한 부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우리나라 10대 기업에 신생기업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하면 여전히 삼성, 현대, 엘지 등의 전통적 대기업을 떠올리는 반면, 미국과 중국의 경우는 페이스북, 구글, 텐센트, 화웨이 등 신생 기업들이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 경제의 역동성에 문제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현실을 직시하자
그러면, 혁신은 어디서 나오며 이를 위한 정책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걸까? 우선 우리나라의 기술혁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많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과 투자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 투입규모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우선, 공공과 민간을 모두 포함하는 국가 총 연구개발비 규모에서는 세계 5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보다 전체적인 경제규모가 훨씬 큰 미국(1위), 중국(2위), 일본(3위), 그리고 독일(4위)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프랑스, 영국, 러시아 (각각 6, 7, 8위)등의 주요국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또한 최근 10년 (2007~2016년)간 총연구개발비 연평균 증가율은 7.7%로, 중국 (15.4%)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을 제외한 주요국보다는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GDP 대비 총연구개발비 (R&D Intensity)는 세계 2위 수준을 유지하며, 이스라엘과 함께 지속적으로 최정상을 다투고 있으나 그 성과는 이러한 투입량에 비례하여 나오고 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2006년 이후 매년 발표되고 있는 과학기술혁신역량지수의 경우,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였으나 (12위 -> 5위), 2017년에는 오히려 순위가 하락 (7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기업 생태계의 변화와 혁신에도 나타나고 있다. 즉, 혁신경제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유니콘 기업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기업)의 수를 살펴보면, 전세계 236개 유니콘 기업들 중, 80.5%가 미국 (116개), 중국(64개), 인도(10개)에서 나왔고, 우리나라의 경우 겨우 3개(’18 3월기준, 쿠팡, 옐로모바일, L&P코스메틱)를 넘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물론 이것이 혁신경제와 우리나라 기업 생태계의 혁신성과 역동성을 모두 반영한다고 보기는 힘들지라도, 지난 10년간 젊은 기업이 차지하는 성장성과 역동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우리 경제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적신호가 됨은 부인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실제로 설립 20~40년 상장 기업의 비중은 2005년 49.6%에서 10년이 지난 2015년 23.9%로 뚝 떨어졌다. 늙어가는 기업이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를 주도하는 주요 기업들이 점차 고령화되고 있다는 것은 기업의 역동성과 경제의 활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경제의 건전성을 높이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반으로서 혁신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들을 제언하고자 한다. 제언의 과정에서 우선, 현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혁신성장의 구현을 저해하고 있는 원인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제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적인 차원의 접근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업가를 춤추게 하라

우선 혁신의 주체는 기업이며, 그 주인공은 위험을 감수하고 사업기회를 포착하여 이를 풀어내어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내는 기업가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기업가정신의 충만한 발현 없이 혁신경제를 달성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땀과 눈물없이 성과를 이루겠다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과연 우리는 지금 얼마나 기업가정신이 충만하고, 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기업가들이 신바람을 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자성이 필요한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경영학의 큰 스승인 피터 드러커 선생께서는, 생전에 진행되었던 한 인터뷰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충만한 나라로 주저 없이 대한민국을 꼽는다고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이는, 일제식민지하의 수탈과 3년간 지속된 한국전쟁이 남긴 생채기를 극복하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군 대한민국에 대한 찬사였고, 그 주체가 되었던 1세대 재벌 창업가에 대한 지지였던 것이다.

물론 그 이후 2000년대를 넘어가며 우리 재벌기업이 보여준 행태들은 기업가정신의 발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큰 부끄러움이 있다는 것에 대해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황금기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부분은 위험을 감수하고 기회를 포착하여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든 기업가정신이 충만했던 분들이 계셨음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즉, 변화와 혁신의 중심에는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사람이 그 핵심 주체임은 논쟁의 여지는 없다. 이러한 1세대 창업기업가들을 이어, 2000년대 이후 크게 부각되며, 우리 경제의 미래 견인차로 부각되고 있는 기술기반 스타트업인 벤처기업에도 그러한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사람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혁신경제의 주체로, 또 청년실업의 대안으로 내세우며 강조하고 있는 청년창업이나, 초기 벤처기업에서 그 사업성 평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는, 기술도 그 회사의 자산도 아닌, 기업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우리보다 벤처기업에 대한 평가 시스템이 먼저 발전되었던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벤처 캐피탈의 심사기준에 가장 기준이 되는 것은, 창업자가 가지고 있는 기업가정신과 그 준비상태라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과연 지금의 정부에서 기업가정신이 충만하게 발현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필자는 지울 수 없다. 경제는 돈, 기술, 제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여러 요소들을 묶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조직으로 체계화할 수 있는 기업가정신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정말 현재의 혁신경제에 대한 정책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기회를 포착하여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기업가정신을 발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는지 자성이 필요하다. 글로벌 기업가정신지수를 발표하는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에 따르면, 지난 해 우리나라의 기업가정신 지표는 27위로 칠레, 에스토니아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회원국 기준으로도 우리나라는 중하위권 수준인 23위에 머물렀다. 기업을 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많은 위험이 수반될 수밖에 없지만, 그 성공의 크기와 과정의 만족이 그 위험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다. 또한 닮고 싶은 기업가의 모습에서 영감과 자극을 얻고 노력을 하게 되는데, 과연 우리에게는 그러한 히어로가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기업가 스스로의 반성 역시 동반되어야 하겠지만, 기업가에 대한 인식을 우리 정책들은 어떻게 심어 주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미래 인프라 창조를 위한 전략과 정책 마련

둘째, 앞에서 제기한 바와 같이 혁신의 주체는 기업가지만, 그 기업가는 사회에 잠재된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이지, 그 토대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한 토대–기업가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혁신을 만들어갈 수 있는 운동장–를 만들어 주는 역할이 정부의 몫이요, 그것의 제공과 방향성의 제시가 산업정책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 정부에 미래의 혁신 산업과 성장의 방향을 이끌고 갈 전략과 산업정책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즉, 혁신을 위한 전체적인 생태계 조성이라는 차원에서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자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모든 것의 초연결과 초지능을 의미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미래의 모습을 그려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산업정책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전통적인 국가 전체주의적 발상의 경제발전 모델이 얼마나 진부한 것인지, 그 모순적인 의미를 필자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하기에 혁신을 위한 생태계 조성이라는 산업정책과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업이라는 개별 주체 입장에서는 거시적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미래 환경변화에 대해 주도적 입장을 가져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되새기며 그 미래에 대한 전체적인 생태계 조성을 정책이 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정책의 역할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가령, 2015년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제조업 생산의 13.6%, 고용의 11.8%, 부가가치 창출의 12%를 담당하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었던 자동차 산업은 지금 가장 큰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대표기업인 현대자동차의 경우,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기 대비 37%나 감소했고, 1차 협력업체마저 워크아웃에 직면하며 산업 전반의 가치사슬이 붕괴될 위기에 있다. 물론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문제는 개별기업 차원에서의 전략적 대응 부재와 노사문제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난 100년간의 자동차산업을 유지하고 있던 경쟁의 규칙 (Rule of Game)이 변화하는 상황을 직면하고도 국가 전체적인 미래 산업에 대한 전략적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그 방향에 맞춘 전략적 실행을 준비하고 있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자동차산업 관련 논의는 노사관계에 대한 고민에 발목이 잡혀 있고, 차세대 동력장치 및 자율주행차에 대한 본격적인 방향성 제시를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상용화에 있어서 세계 선도적인 위치에 있던 수소전지 자동차의 개발과 실행이 속도를 내고 있지 못하여, 상품성을 갖춘 수소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쟁사에게 선도적 위치를 빼앗길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미래 기술에 대한 선점과 이에 대한 노력은 개별 기업 입장에서 진행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가 미래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기술영역에 대한 상업적 성공에는 이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거시적 인프라 구축과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도출되어야 하는데, 이는 정부의 전략적 의사결정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상기한 수소자동차의 경우에도 이것의 실현을 위해서 차량 보급 활성화, 충전인프라 확충, 핵심기술 개발 등 수소차 보급 확산을 위한 규제개선 및 제도정비 등의 핵심적인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선도적 투자 및 정책 없이는 개별 기업이 혁신을 이끌어 가기에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사즉생의 이해 조정과 규제혁파

세 번째로, 우리는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지는 않는가에 대해 심각히 고민을 해 봐야 할 것이다. 혁신과 변화의 과정은 기존에 없었던 가치가 새로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변화를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아산나눔재단과 구글캠퍼스 서울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100대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 가운데, 13곳은 그 사업모델이 한국에서 금지되어 있어 사업을 시작할 수도 없으며, 44곳도 조건부로 겨우 가능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특히 이는 누적 투자액 기준으로 70%가 넘는 혁신 모델 사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사업화에 제한을 받고 있다. 작금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상황을 대변해주는 VUCA(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mbiguity)와 4차산업혁명을 헤쳐 나가는 주역으로 각 국가마다 혁신 기업의 대표로 주목하고 있는 유니콘 기업의 숫자에서도 우리나라는 3개에 불과하다는 현실은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니콘 기업 중 기업가치가 높은 업종이 공유경제, 전자상거래, 핀테크 관련 산업인데 한국에서는 규제가 가장 심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시도된 공유경제관련 비즈니스 모델들이 여러 이해당사자의 견제 속에 불법으로 규정되고 사장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물론 규제는 필요하다. 규제가 결정해주는 사적 영역의 한계와 최소한의 보호장치는 사회를 정글이 아닌 사람이 사는 곳으로 인도해 줌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규제의 영역이 기존 질서의 보호에만 국한될 때, 혁신의 과정은 요원할 것이다. 빈대가 있어도 초가삼간은 지어야 하는데 빈대가 무서워 초가삼간도 짓지 않겠다는 자세는 혁신과 거리가 먼 이야기다. 더하여 정말 비난을 받더라도 국가의 미래를 지향하는 혁신성장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첨예한 대립을 풀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공정한 게임룰 제시

네 번째로 혁신성장의 실현과 혁신기업의 육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공정경제의 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신념이다. 기업 간 거래관행에 대해 우리나라처럼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1975년 제정된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에 따라, 우리 경제는 완성품을 통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대기업과 전속거래를 통해 우수한 부품을 조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중소기업으로 역할분담을 하며 성장을 일궈왔다. 덕분에 대기업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수한 품질의 부품들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며 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었고,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판로를 통해 지속성장을 일궈 나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구조를 만들었던 시점에서는 이른바 낙수효과 (Tricking down effect)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잘사는 형님의 성과들이 공정하게 아래로 내려와서 건전하고 안정된 중산층을 만들어 국가경제를 키워 나간다는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난 30년간의 경험으로 낙수효과는 커녕, 오히려 빨대효과로 표현되는 대기업 집중형의 경제구조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업체 수에서 99%, 고용에서 88%(사업체 기준이며 기업체 기준으로는 76%), 담당하며 우리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완전히 상실되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즉, 전속거래 속에서 매출처가 국한되어 있다 보니 기업의 내부정보가 고스란히 공개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이로 인해 자체적인 혁신의 성과들이 위로 다 빨아 먹히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물론 감시체계 구축으로 과거에 비해 불공정 하도급거래 위반 업체 비율은 점차 개선되고 있으나 조치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는 등 불공정 하도급행위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기술개발에 투입되는 예산은 올해 1조 917억원으로 다른 경쟁국에 비해 굉장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에 대한 지원과 그 노력에 대한 성과가 고스란히 다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혁신의 유인도 제대로 발휘되기 어려움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위한 공정거래의 달성은 우리 경제 정책의 기본중의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양보다 질

마지막으로 정책의 기조는 양과 함께 질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올 8월, 우리는 통계청장이 급작스럽게 교체되는 일을 당황스러운 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다. 정부부서의 기관장은 경질이 되었던, 승진이 되었든, 그 정책기조에 맞추어 교체될 수 있고, 이는 전혀 일반 국민에게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이겠지만, 정부의 상황 인식과는 조금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통계자료의 발표는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었고 이에 근접한 교체는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학자로서 통계의 엄밀함과 엄정함은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숫자로 표현돼야만 통제될 수 있기에, 데이터와 자료에 대한 부분은 모든 논의의 기초가 되어야 하겠지만, 때로는 그 숫자에만 국한되어 그 숫자가 외치고 있는 의미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거나, 또는 그 숫자 자체에만 매몰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즉, 어떤 데이터가 중요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엄밀한 책임이 따르는 일인 것이다. 가령, 2016년 신설법인 수는 9만 6,155개로 2000년 이후 역대 최다를 기록해 창업자 수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도소매업은 늘어났지만 제조업은 1,118개가 줄었다. 이는 새로운 혁신을 담보하는 기회추구형 창업의 비율은 너무 낮은 반면, 생계형 창업의 비중이 63%로 조사된 OECD 통계와 맞아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혁신경제의 주역으로서 성장과 고용을 이끌어가야 할 창업의 질이 낮아지고, 자영업자의 비율만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양적인 부분과 동시에 그 질의 중요성을 반드시 살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죽을 때, 살아나리라
결국 이러한 모든 것들에 대한 고민은, 전략과 정책의 부재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위기에 다시 살아났다. 지난 30년의 경제성장에서 큰 도약과 혁신을 이루었던 시기는 대체로 큰 위기가 있었던 직후였다. 한국전쟁과 내부 갈등의 혼돈은 눈부신 산업화를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의 토대가 되었고, 죽음과도 같았던 IMF 체제를 지나고는 정보화를 기반으로 하는 기술기반 혁신기업(벤처)이 성장하였다. 물론, 지금의 경제 상황이 그러한 위기를 떠 올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건 필자도 인정한다. 다만, 죽어야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진리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