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것은

 

마음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 바로 마음공부입니다 우리가 의문을 품고 있다고 하지만 이 의문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지는 의문과는 그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의문은 과학적인 의문이나 철학적인 의문과는 매우 다릅니다. 예컨대 원자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3개의 의문을 가지고 그 차이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의문을 가질 때에 우리는 이미 원자 존재 마음에 대하여 우리에게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한 정도의 주변적 지식 혹은 기초적 지식을 얼마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을 듣지 못했거나 이름을 들었다 해도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내용이 없다면 의문이 일어날 까닭이 없을 것입니다 의문을 일으킬 실마리가 될 만한 지식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 3가지 의문은 동일합니다. 이제 이 의문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겠습니다. 원자란 무엇인가 라는 과학적 의문을 가진 사람은 기존의 원자라는 개념을 배우고 그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 실험과 관찰을 행하고 그 개념을 여러 가지 관찰된 사실과 더욱 잘 부합하면서도 이론적인 모순이 없는 개념으로 정리해 갑니다. 그 가운데 기존 개념의 오류를 바로잡고 새로운 개념을 세우는 것이죠. 존재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의문의 경우에도 과학적 의문의 해결과 같은 과정을 밟습니다. 다만 철학에서는 실험과 관찰 대신에 오로지 논리 적 사고에 의존하여 기존 개념의 오류를 바로잡고 모순이 적고 여러 이론과 잘 부합하는 새로운 개념을 만듭니다. 이러한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의문의 해결 과정은 한마디로 분별 사유를 통한 탐구과정 이죠. 이러한 탐구는 전체적인 지식 체계 속에서의 개념의 새로운 정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이 기존의 가르침에서 듣는 첫 번째 말은 마음은 분별사유를 통해 탐구될 수도 없고 개념으로 정립 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처음 한동안은 이 말을 납득하지 못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고 스스로는 생각하지만 사실 잘 납득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이전의 버릇대로 여전히 마음을 개념으로 탐구하려고 합니다. 이해하는 것 하고 버릇이 고쳐지는 것하고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이 이 의문을 품고 계속하여 탐구한다면 탐구해 갈수록 더욱더 종잡을 수 없고 오리무중인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개념을 정립하려고 하는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다면 마음에 의문을 품은 사람은 반드시 이렇게 됩니다. 해답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어떤 실마리나 단서도 믿을 만한 것이 없이 그저 의문만 계속될 뿐인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진지한 탐구자라면 마음에 관한 어떤 정보나 실마리도 믿고 의지 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과학이나 철학에 대한 탐구가 지식의 양을 늘려가는 반면에 이처럼 마음에 관한 탐구에서는 오히려 지식의 양이 줄어듭니다. 마음에 관한 지식의 양이 줄고 또 줄어서 이제 한조각의 지식도 믿지 않게 되어서 아주 캄캄한 암흑 속에서 방향을 전혀 가늠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면 비로소 이 의문의 해결이 가까이 다가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어떻게도 손을 쓸 수도 노력도 할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면 두려움과 좌절조차도 맛보는 상황이 되면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갑자기 모든 의문이 사라지고 어둡게 막고 있던 장애물 들이 다 사라집니다. 마음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사라지고 마음은 이런 것이다. 라는 답변도 없습니다. 다만 악몽 속에서 갑자기 꿈을 깬 것처럼 문득 아무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과거와는 달리 매우 선명 합니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모든 것 들이 생생합니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입니다. 그저 언제나 이럴 뿐이고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습니다. 마음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더 이상 의문이 아니므로 이제 의문은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해결되었다 해결되지 않았다 하는 그런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선명하고 또렷해서 아무 의문이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 집 화단에 있는 꽃도 봄에 싹이 올라서 여름에 꽃이 피었다가 가을에 떨어져서 겨울이 되면 말라 죽잖아요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거든요 그건 당연한 거지 왜 이 꽃은 사시사철 피어 있지 않고 여름한철 피었다가 죽느냐 라고 고민하지 않습니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생각조차 안하죠. 또 아침에 해가 떠서 정오에는 하늘가운데에 있다가 저녁이 되면 서쪽으로 지잖아요. 그걸 우리는 고민합니까? 해가 하루 종일 가운데 떠있으면 좋을 텐데 왜 서쪽으로 넘어가지? 그렇게 고민 안하거든요 그렇게 고민하면 바보 취급을 받겠죠.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이 태어나서 늙어 죽는 것을 고민하느냐 이겁니다 똑같은 건데 그렇잖아요? 왜 똑같은 현상을 두고 어떤 것은 고민하고 어떤 것은 고민 안하느냐? 우리도 남이 늙어 죽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잖아요. 남이야 늙어죽든가 그렇지 않든지 신경 안 쓰잖아요. 그렇다면 결국 이게 무엇입니까 내 문제라고 하는 생각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우리 생각이 개입되면 문제가 되는 것이고 생각이 개입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문제 될게 없어요. 그러니까 삶과 죽음을 떠다니는 까닭 은 모두가 제 멋대로 꾀를 부리기 때문입니다 삶과 죽음이란 사실 말이거든요. 말붙이기 나름입니다. 우리는 지금 살아간다. 라고 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죽어간다 라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죠 실제로는 똑같은 말인데 어떤 사람한테 당신 요즘 잘살아가는군요 라고하면 좋아하지만 당신 요즘 잘 죽어가는군요 라고하면 언잖아 하겠지요. 이렇게 우리는 말에 속고 생각에 속고 살고 있지요 그렇다면 말에 안 속고 생각에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냐?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한다 라는 그자체가 말이고 생각이 잖아요 그래서 마음공부가 어려운 점 이 바로 그런데 있는 겁니다 보는데 보지 않고 듣는데 듣지 않고 생각 없이 생각하고 말하지 않고 말하는 아기처럼 살아가는 것이라 볼 수 있 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