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동 모자' 발견 복지사 "도움 거절하던 최씨 '엄마' 꺼내자 말문"      

[인터뷰] 정미경씨 "이번 비극, 제도 아닌 매뉴얼 부재"
"공무원 사명감만 기대선 안돼..구체적 실행지침 필요"
숨진 채 발견된 60대 여성 김모씨의 집에서 발견된 아들 최모씨가 쓴 메모. (정미경 사회복지사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강수련 기자,이상학 기자 = 그 방은 허름했다. 벽지와 장판의 교체 시기는 한참 지난 듯 했다. 방 안에는 냉기만 가득했다.

벽 한쪽엔 '전기공급 제한 예정 알림', '전기공급 정지 안내'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문 앞에는 서울 서초구청에서 보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용 마스크 한 박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60대 여성 김모씨가 마지막까지 발달장애인 아들 최모씨(36)와 함께 지내던 '그 방'의 모습이다.

이른바 '방배동 모자' 사건의 최초 신고자인 사회복지사 정미경씨(53)는 17일 <뉴스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 방에서 벌어진 비극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 나와도 일선 현장 기관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구체적인 매뉴얼(안내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선 공무원들이 단순 사명감만으로 소외계층에 관심을 가지길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도움 거부하던 최씨, 마음 열자 어머니 얘기부터

정씨는 지난달 6일 이수역 12번 출구에서 우연히 최씨를 발견했다. 말도 못 붙이게 하던 최씨는 "어머니가 보내셨다"는 정씨의 말에 경계심을 풀었다. 매일 하늘을 보며 "어머니"를 찾던 최씨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정씨의 기지였다.

이후에도 정씨는 낮에 다른 사람들을 통해 최씨에게 "자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어느새 최씨의 마음도 열렸다. 정씨는 결국 최씨와 한 달여 만에 식사 자리를 가졌다.

어머니에 관해서 쉽게 묻지 못하던 정씨에게 먼저 말을 꺼낸 건 다름 아닌 최씨. 그는 "어머니가 픽 쓰러지셨는데 살아나지 않아요", "그런데 왜 파리가 날아들어요? 애벌레가 제 방까지 왔어요"라는 말을 내뱉었다.

정씨는 여러 질문 끝에 "어머니 몸은 거기(어머니 방)에 있다"는 최씨의 답을 들었다. 이후 경찰에 곧바로 그 사실을 알렸다. 정씨를 돕던 사당지구대 소속 이성우 경위, 동작구 임시공무원 김재영 주임과 함께 최씨의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택에서 발견된 어머니 김씨의 시신은 낡은 이불에 덮여 있었다. 그 옆은 청테이프로 띠처럼 둘려 있었다. 정씨는 "어머니 시신에 벌레가 날아들지 못하도록 최씨 수준에서 최선을 다한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방배동 모자 비극, 제도의 문제 아냐"

방배동 모자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부양의무자 기준 등 제도로 인한 비극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정씨의 시각은 다르다. 이들의 경우 '복지 사각지대'에 있었던 게 아닌 만큼 조금만 살폈어도 충분히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김씨의 경우 혼인관계증명서에서 20~30년 전 이혼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자료는 주거급여를 신청했을 때 이미 냈던 것"이라고 했다. 부양의무자와 가족관계가 단절돼 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가족관계단절확인서 등의 소명자료를 지역 생활보장심의위원회에 보내면, 심의를 통해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최씨의 경우에는 가족이 신청하지 않아 장애인 등록이 안 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가족이 직접 하지 않아도 통합사례관리사가 동행했다면 장애인 등록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정씨는 "최씨가 30여 년간 근로한 적 없었기에 구청이나 주민센터 등에서 소득재산, 자활참여 여부 등 정보를 통해 충분히 (장애인 여부를) 파악할 수 있었다"며 "통합사례관리사나 주변 복지원 등과 협력해서 집을 방문하고 장애인 등록 관련 방법을 고지해줄 수도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정부의 '위기가구 발굴 대상'에서 김씨는 이미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수급권자라는 이유로 제외된 상태였다.

정씨는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이 '위기가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서울도시가스, 한국전력 등에서 단전·단수도·단가스 명단을 통보한다"며 "기초생활수급권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을 돕느라 이들은 제외됐다고 한다. 수긍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달장애인 최모씨가 이수역 앞에서 도움을 청하고 있다. (정미경 사회복지사 제공). © 뉴스1

◇"좋은 정책만큼 '구체적인 실행 매뉴얼' 필요해"

정씨는 참사가 반복될 때마다 정부·지자체에서 내놓는 정책이 효과가 없는 이유에 대해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매뉴얼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2014년 송파구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 이듬해 서울시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을 출범했다. 본인이나 가족이 신청해야 지원하는 '신청주의'에서 벗어나 생계가 어려운 주민을 직접 찾고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정씨는 "찾동은 분명 좋은 정책이지만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유명무실해졌다"며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기존 복지대상자들의 안부를 꾸준히 확인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 그는 현장 공무원 개개인의 '사명감'에만 기대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참사가 일어났을 때 '형식적'으로나마 페널티를 주는 방식을 제안했다.

지난 15일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기초생활수급자 외 2인 가구도 돌봄 대상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정씨는 이를 환영하면서도 "대책이 실행될 수 있는 실질적 매뉴얼과 확인 체제 등 제도적인 시스템까지 갖춰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도와달라"는 절규..."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야"

"도와달라는 데 사람들은 왜 1000원씩만 주는 거예요?"

최씨가 정씨에게 한 말이다. 최씨의 '도와달라'는 외침에 길거리를 지나치던 사람들은 100원, 1000원으로 답했다. 정씨가 나타나기 전 최씨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복지 현장도 이와 비슷하다는 게 정씨의 의견이다. 그는 "주민센터에 가서 2만~3만원 차비를 지원받으러 왔다고 말하면 '그런 거 없다'고 답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럴 때에는 지원이 없다고 말할 게 아니라, "왜 2만~3만원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정씨는 "일선 현장 담당자들이 복지 대상자인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상황을) 물어보고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실행 매뉴얼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현재 최씨는 정씨가 활동하는 '커뮤니티 케어' 모임에서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복지관을 다니면서 그동안 받지 못했던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사회에 녹아드는 법도 배울 예정이다.

정씨는 "최씨는 정말 착한 사람"이라며 "프로그램, 교육 등을 통해서 정규직 장애인 일자리에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숨진 김모씨와 아들 최모씨가 살던 서울 서초구 다세대주택 내부. (정미경 사회복지사 제공).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