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진짜 비극은 ‘현실성 없는 법’

[반복되는 아동학대, 허점 어디인가] <상>
말 안하는 아동, 제한된 경찰 권한… 예고된 비극


최근 발생한 서울 양천구의 16개월 입양아동 학대 사망 사건과 전남 여수의 영아 사망 사건은 사전에 막을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양천구 입양가정은 사망하기 전 경찰에 3차례나 아동학대 신고가 됐고, 여수에서는 이웃주민과 지방자치단체 등이 몇 차례 해당 가정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동학대 조짐이 충분히 감지될 수 있었지만 참혹한 결과를 막지 못했다는 얘기다.

아동학대 예방업무 담당자들은 법·제도와 실제 마주치는 현장의 간극에서 비극의 원인을 찾고 있다. 피해자인 아동은 제대로 피해 사실을 진술하지 못하고, 가해자인 부모는 조사에 완강히 저항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진술과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동과 부모를 떼어놓는 등의 적극적 개입을 하기에는 법이 허용하는 권한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집에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물적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학대 여부를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국민일보가 7일 만난 서울 일선 경찰서 소속 APO(학대예방 경찰관)들은 모두 구체적 증거 확보가 쉽지 않은 아동학대 사건의 특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피해자가 어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경우 진술을 받을 수 없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이라 해도 피해 아동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우 진술을 회피하기도 한다.

3년 차 APO인 A씨는 2년여 전 학생이 멍이 든 것을 수상히 여긴 한 초등학교 교사의 신고를 받았다. 아이는 거듭 “넘어져서 다쳤다”고 말했지만 A씨와 교사가 며칠 설득한 끝에 “엄마가 때렸다”고 털어놨다. A씨는 “몸에 멍자국을 발견해도 아이가 말하지 않으면 넘어져서 생긴 건지, 맞아서 생긴 건지 구분이 안 된다”며 “구체적인 학대 정황이 드러나지 않는 한 진료를 권해도 보호자가 거부하면 조사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학대·방임을 일삼았다 해도 아동 입장에서는 유일한 보호자인 부모와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2년 차 APO인 B씨는 지난 9월 6살, 3살 아이들이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홀아버지에 의해 몇 년간 길러지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그런데 아빠와 아이들이 퍽 다정했고 아이들은 아빠에게 찰싹 붙어 있었다고 한다. B씨는 “당장 분리 조치가 필요한 상황으로 판단되는데 아이들이 학대나 방임을 당하는지도 모르고 아빠를 따르니 적잖이 당황했다”고 전했다. 분리 조치를 취할 때는 피해 아동의 의사도 반영해야 하는데 정작 아동이 ‘우리 엄마 아빠 잡아가지 말라’며 울고 떼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처럼 아동학대 사건은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육체적·정신적 학대가 일어났다는 것을 현장에서 바로 포착하기 어렵다. B씨는 “경찰은 형사적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며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등 다른 관점을 가진 전문 인력과 현장에서 아동학대 여부를 함께 논의한다면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어렵고 피해자 진술 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물적 증거 외에 정황적 증거, 전문가 의견 등도 증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증거인정 범위를 넓혀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호자가 저항하거나 비협조적일 경우 응급·임시 조치나 조사는 더 어려워진다. B씨는 최근에도 미혼모 시설에서 생후 6개월 아기의 기저귀도 갈아주지 않는 등 방임하는 한 미혼모로부터 아기를 분리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B씨는 “엄마가 아기를 꼭 안고 ‘내 아이 건드리면 너희 다 죽일 거야’라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데 어떻게 강제로 뗄 수 있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위기가정의 경우 복지 혜택을 제공하려 해도 보호자가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 A씨는 지난 10월 아동방임 의심신고를 받고 한 가정을 방문했다.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고, 엄마와 아이 모두 쌀을 끓인 멀건 죽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아이는 영양실조에 위생 관리도 제대로 안 된 모습이었다. 더 큰 문제는 엄마가 무직인데도 외국 국적인 탓에 수급 대상이 아니란 점이었다. 현장에 함께 출동한 지자체 담당자가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귀화를 권유했지만 정작 엄마는 거부했다. 여수 영아 사망 사건 가해자인 미혼모 역시 지자체의 미혼모 지원 등을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으로 인해 APO가 아동학대 사건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A씨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아동학대·가정폭력 등으로 신고돼 관리가 필요한 가정 40~50곳을 맡고 있다. 아동학대뿐 아니라 가정폭력, 노인학대 등 다른 사건도 맡기 때문에 상시 관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APO들의 심리적 스트레스도 상당해 업무를 2~3년 이상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APO들은 이런 한계들로 아동학대 예방 업무가 기피 대상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B씨는 “아동학대 현장 조사를 할 때마다 나중에 재신고가 들어오지 않도록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아동학대 여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려 한다”고 토로했다. A씨는 “저희가 현장에서 적절하게 판단하고 개입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한 논의가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8452&code=11131100&cp=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