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보리 대표는 찾아가는 상담을 진행해볼까 생각을 하고 당사자인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답이 없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정부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발생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무엇보다 그동안 20~30대 청년 위주의 사업을 해 50대 은둔형 외톨이는 자신이 없었다. 그는 “저희도 50대는 경험이 없다. 찾아간다고 해도 뭘 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고보리 대표는 일본 히키코모리 지원 기업인 K2의 한국지사 대표로 2012년부터 많은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를 만났다.
파이심리상담센터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도 40대 은둔형 외톨이 사례를 접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당사자는 안 나타나지만 ‘우리 아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며 70대 아버지가 오신다. 곧 있으면 노년 은둔이라고 불러야 할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한테 오는 문의 가운데 30대 중후반 사례가 꽤 있다”며 “20대부터 10년가량을 은둔과 사회활동 사이에서 들쑥날쑥하던 경우다. 우리나라도 장기화가 분명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대령 이아당심리상담센터장은 IMF 사태 이후 고용이 악화하고 더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가 되면서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났고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가 돼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현재 40대 초중반 세대는 먹고 살기 어려워 집 밖으로 나가야 했던 과거 세대와 달리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40대가 부모에게 의존하는 상황은 조만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박 센터장은 “그들의 부모는 은퇴자금을 자식들에게 써야 한다. 그러다 경제적으로 몰락하면 일본처럼 동반 자살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부터 히키코모리 문제가 발생한 일본에선 ‘8050 리스크’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8050이란 ‘80대 부모와 50대 히키코모리 자녀’를 이르는 말이다. 은둔형 외톨이 자녀와 함께 노부모의 생활이 망가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앞서는 ‘7040 리스크’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늙어가면서 8050 리스크로 진화했다. 이런 가정에선 부모를 폭행하거나 부모가 숨져도 연금수급을 위해 시신을 집 안에 방치하는 일이 발생한다.
지난 3월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무직·독신으로 고령의 부모에게 의존하는 40~50대 은둔형 외톨이가 있는 세대는 2013년 기준 약 57만 가구로 추계됐다. 1995년보다 약 3배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40대 자녀를 둔 가구는 약 38만 가구였다. 일본의 지난해 40~64세 히키코모리 인구는 약 61만3000명으로 추정된다. 아사히는 “부모들이 (자녀의 은둔을) 치욕으로 여겨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빈곤과 고립이 심화되면 공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현재 중년 은둔형 외톨이 규모를 추정할 만한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을 발굴하고 사회복귀를 지원할 시스템이 전무하다.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들은 청년에 비해 더 은둔에서 탈출하기 어렵다. 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준비모임(현 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이 지난 8월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한 중년 은둔형 외톨이는 “나이 들어서도 사회에서 자리 잡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때문에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에서조차 자신을 숨기고 집 안에서 썩어가기만 한다”고 답했다. 박대령 센터장은 “은둔이 장기화할수록 상담이 효과가 없고 오히려 상담자에게 상처를 받아 스스로 더 무기력해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출신인 윤철경 G’L학교밖청소년연구소장은 “최근 들어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나이도 낮아지고 있다”며 “가정에서 억압이 있는 상황에서 학교에서도 보살핌을 받지 못하니 점점 방으로 숨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소장은 은둔형 외톨이의 저연령화가 사회경제적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핵가족화로 인한 가정해체와 놀이 공간의 감소로 아이들이 관계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졌고, 과거처럼 경제 성장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아이들의 불안감이나 무력감이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대안학교인 꿈터학교의 배영길 교장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은둔을 시작한 김민희(가명·27)씨 이야기를 취재팀에게 들려줬다. 민희씨는 당시 빛이 싫어 문틈에 테이프를 붙이고 생활했다고 한다. 8~9개월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누워 잠만 잤다. 민희씨의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과 일관되지 못한 양육 태도를 보였다. 언니는 자주 가출을 했다. 친척들 간 왕래나 이웃 간 교류도 없었다. 학교도 민희씨를 보살펴주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초반 민희씨는 책상 선을 넘는 것으로 남자 짝꿍과 다퉜다. 담임교사는 민희씨에게만 교탁 옆에 책상과 의자를 갖다 놓고 수업을 받도록 벌을 내렸다. 민희씨는 그날 하루만 넘기면 된다고 생각하며 창피함을 참았다. 하지만 교사는 1학기 내내 그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배 교장은 “민희의 은둔 요인은 가정적인 문제도 있지만 인성이 부족한 교사가 상처를 준 것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둔형 외톨이 지원 현장에서 발견되는 사례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취재팀의 심층 인터뷰에 응한 사례도 18건 가운데 2건만 당사자가 여성이었다. 청년재단의 ‘고립 청년 실태조사’ 참가자도 47명 가운데 남성이 31명(66%)으로 여성의 약 2배였다.
여성 은둔형 외톨이가 외부에 덜 드러나는 이유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남녀를 바라보는 부모와 사회의 시각차에 따른 것일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윤철경 소장은 “사회적 기대가 (남성에게) 더 크다 보니 부모들은 아들이 은둔할 때 심각성을 더 느끼는 것 같다”며 “(여성은) ‘시집보내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면서도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직장을 갖고 일해야 하고, 여성은 집에 조용히 있는 것’이라는 고정관념 탓에 여성에 대해서는 부모들이 상대적으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일본도 상황이 비슷해 여성 히키코모리가 더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NHK방송은 지난 10월 여성 히키코모리가 남성에 비해 잘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타큐슈여성한걸음회’가 지난해 6~9월에 기타큐슈시와 인근에 거주하는 히키코모리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5%는 전국 실태조사에서 전업주부 등으로 분류돼 히키코모리로 분류되지 않았다. 이 단체는 기타큐슈시의 은둔형 외톨이 지원기관 이용자의 70%가 남성인 점을 지적하며 “여성에게 특화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green@kmib.co.kr